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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시은                                           일시 2004-11-22 22:24:13
  글제목  빗자루를 든 반딧불이

빗자루를 든 반딧불이  

빗자루를 든 중년의 사내

낡은 신호등이 버드나무처럼 서 있는

보도 블록 옆을 쓸고 있다 마른 낙엽들

터진 부대자루 속으로 차곡차곡 담는다

바람은 소근소근 다가와 부대 속에

낙엽들을 날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호흡하기 힘든 자리일수록 뿌연 돌가루가 날리고

녹이 슨 리어카 바퀴살 사이로 저녁 해가 지고 있었다

낯선 차량이 헤드라이트를 들이밀 때마다

붉은 수인이 사선처럼 박힌 작업복을

옛 상처를 들추듯 가끔씩 붉히곤 했다

그는 어디로 흘러가는 낯선 불빛을 쓸어 모으는 중일까

그의 젊은 날은 어린시절부터 어머니의 손을 잡고 따라가

십자가를 머리 위에 두르고 드리던

성당의 새벽 미사처럼 무슨 종교 같은 것이었으리라

삶은 차라리 멍에를 짊어지듯

휘청이는 리어카를 쓸쓸히 끌고 가는 거라고

그는 말하지 않았다

끝내 떠나보내지 못하고 질질 끌었던 사랑은

어둔 골목길에서 신호등이나 표지판도 없이

때론 막막했거나 불안했었으므로

그러나 그는 오늘도 무언가를 열심히 쓸어 담으며 길을 나선다

매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는 갈라진 손등 사이로

흙먼지가 눈발처럼 박히고 마른 버즘이 입가에 번질지라도

앞으로 가야 할 길 묻지 않았다

빛 자루를 든 반딧불이 타는 노을 속에

세월의 낮은 음표 하나씩 싸륵 싸륵 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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