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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완하                                           일시 2014-06-27 23:34:41
  글제목  자선 대표 시 - 1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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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 대표 시 10]

 

          절정 외 9

 

 

                    김완하

 

 

히말라야의 쇠재두루미는

 

나뭇가지에 앉지 않는다

 

봉우리를 넘을 때 높은 암벽 칼날

 

향해서 나래친다

 

힘이 부치면,

 

더 높은 벼랑으로 차 오른다

 

천길 바닥으로 떨어지는

 

쇠재두루미떼 그림자 쌓여

 

히말라야는 점점 높아간다

 

 

 

          그늘 속의 집

 

 

그림자 따라 걷다가

빈집 앞을 지난다

제 그림자 볼 수 없어 매미는

땡볕 속에 소리를 쏟아낸다

소리에는 그림자가 없다

마당엔 풀들이 가득 에워싸고

집에는 그림자 풍년이 들었다

제 그늘 속에 집은

턱 하니, 또 한 채의 집을 짓고

마당 가득 풀을 키웠다

우거진 그늘 안고 누웠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

밖의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집은 비로소 집에서 벗어나

그늘 속으로 내려 앉았다

집을 세운 사람들 품고,

낑낑대는 강아지 한 마리의 밤도

아늑하게 품어 키웠다

이제 새벽 별빛만 뜰팡 위로 구른다

사람들이 떠나자 집은

비로소 허물을 벗어버리고

한 채의 그늘로 돌아가

집 속에 집을 완성하였다

 

 

          허공이 키우는 나무

 

 

새들의 가슴을 밟고

나뭇잎은 진다

 

허공의 벼랑을 타고

새들이 날아간 후,

 

또 하나의 허공이 열리고

그곳을 따라서

나뭇잎은 날아간다

 

허공을 열어보니

나뭇잎이 쌓여 있다

 

새들이 날아간 쪽으로

나뭇가지는,

창을 연다

 

 

          매미의 무덤

 

 

지상에서의 며칠 삶을 위해

매미는 수년간 땅 속에 묻혀 있다

땅에서 부활하는 순간이

곧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매미는 자기 죽음에 대한 조상(弔喪)으로

스스로 울다 최후를 맞는다

기대어 울던 나무 밑이 바로 자신의 무덤이다

 

이듬해 나무는

매미의 주검을 파먹고

이파리 줄창 자라나

무성한 그림자로 한여름을 덮는다

 

 

          눈길

 

 

네가 밟고 가는 길이 너의 길이다

 

네 발자국이 너를 따라가리라

 

차갑게 빛나는 겨울나무 하나 네 뒤를 따르고

 

네 발자국에 괸 고독이 너를 밀고 가리라

 

 

 

          발자국

 

 

너는 항시 뒤에 남아

길 위에서 생을 마친다

네 온기를 남김없이 길 위에 비운다

 

마을 하나에 닿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너의 목숨을

길 위에 뉘어야 하는가

 

어두워 집에 돌아온 밤

부르튼 발 씻으며

그제야 나는 바닥에 가 닿는다

 

돌아보면 내 몸 구석구석

네 그리움으로 커온 길이 있다

발자국이여.

네가 먼저 마을에 가 닿았구나

 

 

 

          뻐꾹새 한 마리 산을 깨울 때

 

 

뻐꾹새 한 마리가

쓰러진 산을 일으켜 깨울 때가 있다

억수장마에 검게 타버린 솔숲

등치 부러진 오리목,

칡덩굴 황토에 쓸리고

계곡 물 바위에 뒤엉킬 때

 

산길 끊겨 오가는 이 하나 없는

저 가파른 비탈길 쓰러지며 넘어와

온 산을 휘감았다 풀고

풀었다 다시 휘감는 뻐꾹새 울음

 

낭자하게 파헤쳐진 산의 심장에

생피를 토해 내며

한 마리 젖은 뻐꾹새가

무너진 산을 추스려

바로 세울 때가 있다

 

그 울음소리에

달맞이 꽃잎이 파르르 떨고

드러난 풀뿌리 흙내 맡을 때

소나무 가지에 한 점 뻐꾹새는

산의 심장에 자신을 묻는다

 

 

 

          칡덩굴

 

 

저렇듯 얽혀 사는 아름다움을 보라

험한 비탈길 함께 기어오르는,

 

하나의 뿌리로 여러 개 하늘을 품고

무더기무더기 꽃을 피우는

 

아픔으로 얼크러져 바로 서고

서로의 상처를 온몸으로 감싸 주며

 

가파른 어둠 벼랑을 타고 올라

죽음까지도 함께 지고 가는

 

 

 

          눈발

 

 

내장산 밤바람 속에서

눈발에 취해 동목(冬木)과 뒤엉켰다

뚝뚝 길을 끊으며

퍼붓는 눈발에

내가 묻히겠느냐

산이여, 네가 묻히겠느냐

수억의 눈발로도

가슴을 채우지 못하거니

빈 가슴에

봄을 껴안고 내가 간다

서래봉 한 자락

겨울바람 속에

커다란 분노를 풀어놓아

온 산을 떼 호랑이 소리로 울고 가는데

눈발은 산을 지우고

산을 지고 어둠 속에 내가 섰다

몇 줌 불꽃은 산모롱이마다 피어나고

나무들은 눈발에 몸을 삼켜

허연 배를 싱싱하게 드러내었지

나이테가 탄탄히 감기고 있었지

흩뿌리던 눈발에

불끈 솟은 바위

어깨에 눈 받으며 오랜 동안 홀로 들으니

산은 그 품안에 빈 들을 끌어

이 세상 가장 먼 데서

길은 마을에 닿는다

살아 있는 것들이 하나로 잇닿는 순간

숨 쉬는 것들은

이 밤내 잠들지 못한다

맑은 물줄기 산을 가르고

모퉁이에서 달려온 빛살이

내 가슴에 뜨겁게 뜨겁게 박힌다

내장산 숨결 한 자락으로

눈발 속을 간다

 

 

 

          생의 온기

 

 

더러는 아픈 일이겠지만

가진 것 없이 한겨울 지낸다는 것

그 얼마나 당당한 일인가

스스로를 버린다는 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몰아치는 눈발 속에서

눈 씻고 일어서는 빈 벌판을 보아라

참한 풀잎들 말라 꺾이고

홀로의 목마름 속

뿌리로 몰린 생의 온기,

함박눈 쌓이며 묻혀 가는 겨울잠이여

내가 너에게 건넬 수 있는 약속도

거짓일 수밖에 없는 오늘

우리 두 손을 눈 속에 파묻고

몇 줌 눈이야 체온으로 녹이겠지만

땅에 박힌 겨울 칼날이야 녹슬게 할 수 있겠는가

온 벌판 뒤덮고 빛나는 눈발이

가진 건 오직 한줌 물일 뿐이리

그러나, 보아라

땅 밑 어둠 씻어 내리는 물소리에 젖어

그 안에서 풀뿌리들이 굵어짐을

잠시 서릿발 아래 버티며

끝끝내 일어설 힘 모아 누웠거늘

자신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당당한 일인가

 

           [계간 <시와소금> 가을호, "오늘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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